아라곤

처음 새 보금자리에 들어왔을 때, 아라곤은 겨우 여섯 달 된, 겁과 털로만 이루어진 작은 덩어리였다. 창문은 물건을 내던지는 곳이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는 틀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 이전의 차가운 밤들에서 그가 누군가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순간은 대부분 어른들이 술에 취했을 때뿐이었다.
자기만을 위한 상자도, 몸을 말고 숨을 수 있는 구석도 없었다.
싱크대나 욕조에 급한 일이 처리되고 나면 거친 욕설과 함께 다시 얼어붙은 어둠 속으로 쫓겨났고,
그 속에서 혼자 밤을 견뎌야 했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런데도 어딘가에는 조용히 살아남고 싶어 하는 의지가 남아 있었는지, 아라곤은 그날 이후로 조금 더 오래 새로운 시간을 붙잡아 보기로 한 듯했다.

지금은 키가 훌쩍 큰 줄무늬 고양이가 되어, 너무 따뜻한 가디건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창가에 늘어져 낮잠을 잔다.
예전에는 냄비가 비워질 때까지 혀로 훑어 내리고, 덜 닫힌 냉장고에서 슬쩍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다. 매운 빨간 카레조차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간식인 양 맛을 보았다.

사람들이 차마 먹지 못했던 룸메이트의 테리야키만 빼고는, 미처 치워 두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든 한 번씩은 입을 대 보았다.

이제는 입맛도 까다로워졌지만, 누군가 부엌에서 움직이기만 해도 귓끝이 살짝 기울어지는 걸 보면 아직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듯하다. 혹시 오늘도 냄비 속을 한 번쯤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해 보는지도 모른다.

아라곤은 어느새 집 안의 조용한 동거인이 되었다. 발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뒤를 따르다가도 적당한 거리에 살포시 몸을 눕히고, 반쯤 감긴 눈으로 방 안을 오래 바라본다. 사람들에게 슬픔이 내려앉는 날이면 말 없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아무 요구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자기 몸의 온기와 무게로만 곁을 지킨다.

오랜 시간,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모양만 움직이고 소리는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곤 했다. 이제는 가끔 작고 거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어느 때에는 작은 비둘기처럼 낮게 구르릉거리기도 한다.

세월은 뼈마디 곳곳에 남아 있다. 몸은 예전보다 가늘어지고, 점프는 낮아졌으며, 잠드는 시간은 길고 깊어졌다. 그래도 버티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여전하다.
도움을 받는 일은 썩 내키지 않아 하고, 눈빛 속에는 아직 오래된 자존심이 남아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면 먼저 조심스러운 눈길로 살펴보고, 조용히 예의를 지키듯 거리를 둔다.
상대가 다정하면 그 다정함만큼의 묵직한 호의로 답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시끄럽고 벅차지면 그냥 말없이 자리를 떠난다.
그에게는 발톱도, 이빨도 선을 긋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저 등을 돌려 다른 자리를 찾아가 앉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라곤은 소리를 키워 방을 채우는 대신,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기를 바꾸어 놓는 조용한 수호자 같은 존재다.
거창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창가 위에 포근한 무게 하나가 얹혀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잠시 덜 시끄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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