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평화.
마침내 생각들이 잠잠해진다.
거센 파도와 거친 바람이 몰아쳐도, 이 바다 곁에는 이상할 만큼의 고요가 흐른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쉰다. 이렇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다.

삶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고, 마음에는 잔잔한 평온이 깃든다.
눈앞에서 바다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앞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본다.
호흡이 느려지고, 가슴도 함께 고요해진다.

맨발이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젖은 모래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모래가 부드럽게 발을 감싼다.
포근하고 따뜻하게, 해변이 발을 안아 주는 것만 같다.

갈매기들이 머리 위를 돌며, 갓 일어난 돌풍과 장난치듯 거친 춤을 춘다.
공기 흐름 위에 몸을 싣고, 스쳐 가는 바람 하나까지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순수한 기쁨이다.
그들의 비행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가벼움이 담겨 있다.

차가운 바람이 물 위를 스치며, 용기를 주려는 듯 달래는 말을 속삭인다.
나는 거친 바다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본다.
머리 위의 회색 구름층은 곧 비가 내릴 것이라고 약속하듯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짭조름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고, 바닷바람이 얼굴을 차갑게 식혀 준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마침내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또렷이 느끼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안다.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나는 눈을 뜬다.
현실이 나를 다시 제 자리로 데려와 놓는다.
자작나무 꼭대기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 검은 새를 올려다본다.
“계속 가자.”

나는 창문을 닫고, 다시 이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질 준비를 한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든, 북쪽은 늘 내 안에 머문다.
가슴에는 바다를 품고, 귀에는 파도 소리의 선율을 간직한 채.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조만간, 다시 바다를 찾아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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